신순교자 성 아바쿰(†1628): 테살로니키의 수도순교자와 메기스티 라브라 수도원의 비망 기록

돔과 아치형 창이 있는 메기스티 라브라 수도원의 붉은 카톨리콘과 뒤편의 숲 우거진 산비탈
아토스산 메기스티 라브라 수도원의 카톨리콘, 2006년 4월 28일. 이 수도원 도서관에는 테살로니키에서 있었던 성 아바쿰의 순교(1628)에 관한 비망 기록이 남아 있는 Ω 89 사본이 소장되어 있다. 사진: Dimboukas(퍼블릭 도메인).

신순교자 성 아바쿰은 성인전 용어로 말하면 수도순교자, 곧 순교로 생을 마친 수도자이다. 그는 한 인물에 관해 통상의 성인전 전승이 전하는 기본 정보가 단 한 문장에 모두 담기는 드문 경우에 속한다. 그 문장은 아토스산 메기스티 라브라 수도원에 전하는 필사본, 곧 Ω 89 사본의 155번째 엽에 이름 모를 이의 손으로 적혀 있으며, 이에 따르면 아바쿰이라는 수도자가 1628년 8월 6일 테살로니키에서 순교하였다. 일반적인 성인전 참고서에는 그의 순교 기록(이폼니마), 즉 신순교자의 기억에 으레 따라붙어 그의 출신과 체포, 심문, 최후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이 전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신순교자 시낙사리온》에도, 일찍이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인쇄본 시낙사리온들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아바쿰은, 필자가 보기에, 한 성인의 기억이 책 한 권에 남은 메모 하나로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거의 교과서적인 사례이다.

Ω 89 사본의 비망 기록

포스트비잔티움 시대의 필사 전통에서 엔티미시(비망 기록)란 독자나 소유자, 혹은 수도원의 수도자가 사본의 빈 엽이나 여백에 덧붙인 짧은 메모를 가리킨다. 그들은 이를 통해 기억해 둘 만하다고 여긴 일을 적어 두었다. 누군가의 죽음, 지진, 역병, 흉년, 또는 이 경우처럼 한 순교가 그런 일이었다. 근래의 기술들은 아바쿰에 관한 비망 기록을 17세기 사본과 연결하며, 그 본문은 다음과 같다. “ζρλς’년 8월 6일, 수도성인이자 새 순교자인 아바쿰이 대도시 테살로니키에서 정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영광과 자랑이 되어 순교하였다.” 연도는 당시의 관례대로 천지창조 기원으로 표기되었는데, 7136년을 알파벳 숫자로 적은 것이다(͵ζ = 7000, ρ = 100, λ = 30, ς = 6). 비잔티움의 한 해는 9월 1일에 시작되었으므로 7136년 8월은 서기 1628년 8월에 해당한다. 그레고리력은 당시 정교회 동방에서 채택되지 않았으므로, 오늘날의 독자는 이 날짜를 율리우스력으로 읽어야 한다. 따라서 메모 작성자의 8월 6일은 그레고리력으로 같은 해 8월 16일이 된다.

이 메모를 누가 썼는지, 그리고 사건이 있은 지 얼마나 지나서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날짜가 정확하고 기적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는 점만으로는 기록 시점을 사건 직후로 잡기에 충분하지 않다. 필사자는 순교 소식을 직접 들었을 수도 있고, 믿을 만하다고 여긴 앞선 자료에서 얻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판단은 해석일 뿐 증거는 아니다.

증언이 말하는 것과 침묵하는 것

그렇다면 이토록 간결한 문장에서 확실하게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먼저 이름이다. 이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같은 이름의 예언자의 이름이다. 다음은 “수도성인이자 새 순교자”라는 칭호인데, 당대 교회 언어에서 이 표현은 순교한 수도자를 가리킨다. 아바쿰이 수도자였고 아마도 아토스산의 수도자였으리라는, 널리 받아들여진 가설은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비망 기록이 어느 수도원도 밝히지 않으므로 이는 어디까지나 가설로 남는다. 메모가 라브라 수도원의 사본에 남았다는 사실은 아토스산과의 연관을 그럴 법하게 만들지만 그것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필사본은 이리저리 옮겨졌고, 소식은 수도원에서 수도원으로 전해졌으며, 아토스산의 수도원들은 테살로니키와 할키디키에 메토히온, 곧 토지와 수도자 거처를 갖춘 부속 시설을 두고 있었다. 이런 경로를 거쳐 도시의 소식은, 순교자 자신이 아토스의 수도자가 아니었더라도 성산에 이를 수 있었다.

메모가 말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출신, 나이, 그에게 씌워진 혐의, 죽음의 방식, 매장지가 모두 그렇다. 끝맺는 구절 “정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영광과 자랑이 되어”는 이 시기 교회 문헌의 상투적 어휘에 속한다. 이를 정황에 관한 정보로 읽어서는 안 되며, 필사자가 사건을 어떻게 이해했고 누구를 위해 기록했는지를 보여 주는 표지로 읽어야 한다. 아울러 순교일이 주님의 대축일인 구세주의 거룩한 변모 축일과 겹친다는 점도 짚어 둘 만하다. 사료는 이 일치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으며, 여기에 상징적 의미를 읽어 내는 해석이 있다면 그 책임은 당대의 증인이 아니라 후대의 해석자에게 있다.

1628년의 테살로니키와 신순교자들

우리의 필사자가 테살로니키를 “대도시”라 부르던 무렵, 이 도시는 1430년 이래 거의 두 세기 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옥좌에는 술탄 무라트 4세(1623–1640)가 앉아 있었다. 테살로니키는 인구가 많고 여러 언어가 오가는 도시였다. 그곳에는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그리고 15세기 말 이베리아반도에서 유대인이 추방된 뒤 이주해 온 대규모 세파르디 유대인 공동체가 함께 살았다. 오스만 제국의 여느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일상은 저마다 구별된 법적 지위를 지닌 종교 공동체 체제에 따라 움직였다. 정교회는 근대에, 주로 오스만 시대에 신앙 때문에 처형된 그리스도인들을 초대 교회 몇 세기의 순교자들과 구별하여 신순교자라고 부른다. 그들의 순교록은 흔히 수도자들이, 그중에서도 많은 경우 아토스산의 수도자들이 지었으며, 정황이 서로 크게 다른 사례들을 서술한다. 바로 이 다양성 때문에, 구체적인 서사적 증언 없이는 아바쿰에게 알려진 유형 가운데 어느 하나를 덧씌울 수 없다.

시메온 파스할리디스는 이 도시의 성인들을 다룬 테살로니키 아리스토텔레스 대학교의 공개 학술 강좌에서 아바쿰을 17세기 테살로니키 신순교자 계보의 맨 앞에 두는데, 이 계보는 19세기까지 이어진다. 그는 또한 다른 사료에는 나오지 않는 두 가지 정보를 제시한다. 첫째는 아바쿰이 “카리에스의 라브라”, 곧 아토스산의 행정 중심지에서 수행한 수도자였다는 것이다. 이 명칭을 아토스반도의 다른 곳에 자리한 메기스티 라브라 수도원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둘째는 최근까지 그의 이름과 순교 방식만 알려져 있었으나, 우크라이나어에서 옮긴 그의 순교록 번역본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마지막 정보가 간행본으로 확인된다면, 그의 순교 이야기가 슬라브 정교회 세계에 유포되었다는 뜻이 된다. 다만 그 이야기가 언제 지어졌고 언제 퍼졌는지는 강의 자료만으로는 밝힐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우리가 그려 온 모습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강의 자료는 순교록의 간행본을 전거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소식은 입증을 기다리는 연구상의 단서로 다루어야 한다. 비망 기록이 특정하지 않는 순교 방식이 알려져 있다는 언급 역시 마찬가지이다.

필사본의 여백에서 성인록으로

비망 기록이 성인록에 이르는 길은 레온토폴리스의 전 대주교 소프로니오스 에프스트라티아디스를 거쳤다. 에프스트라티아디스는 라브라 수도원의 수도자이자 의사인 스피리돈과 함께 1925년 하버드 신학 연구(Harvard Theological Studies) 총서의 하나로 라브라 수도원 그리스어 필사본 목록을 간행하였다. 이 목록의 한 각주에는, 별표로 표시된 사본들의 연대 메모와 그 밖의 메모가 이미 에프스트라티아디스에 의해 잡지 《그리고리오스 팔라마스》에 〈아토스산 사본들의 메모〉라는 제목으로 따로 발표되었기에 여기에 다시 싣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이 세부 사항은 아바쿰의 경우와 같은 증언들이 흔히 필사본 기술과는 별도로 나온 비망 기록 간행물을 통해 인쇄물에 이르렀음을 일깨워 준다. 이 수도순교자의 이름을 처음으로 성인전 참고서, 곧 《정교회 성인록》에 올린 이도 바로 에프스트라티아디스였다.

그 이름은 거기서 후대의 참고서들로 옮겨 갔다. 러시아의 《정교회 백과사전》은 제1권에서 아바쿰에게 짧은 항목을 할애한다. 이 항목은 그가 테살로니키에서 고난을 받았으며 라브라 수도원의 사본과 《소기도서》에 기억되어 있고, 축일이 8월 6일이라고 적는다. 또한 에프스트라티아디스의 《성인록》 외에 《종교·윤리 백과사전》과 페란도니스의 《사전》을 전거로 든다. 성인전 전승은 나아가 그의 유해 일부가 아카르나니아에 있는 성모 탄생 수도원에 모셔져 있다고 전한다. 이 정보와 관련해서는 그 수도원을 특정하거나 유해가 어떻게 그곳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하는 간행된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다. 덧붙여 두자면, 이 정보는 순교자의 유해가 적어도 일부는 보존되었음을 전제하는데, 비망 기록은 이에 대해 침묵한다.

8월 6일, 성 아바쿰의 기억

정교회는 신순교자 성 아바쿰의 기억을 그의 순교일인 8월 6일에 기린다. 그의 이름은 그리스 정교회 사도적 봉사회(아포스톨리키 디아코니아)가 발표한 신순교자 목록에 올라 있다. 이날의 전례를 압도하는 변모 축일과 겹친다는 사실은, 그의 기억이 왜 널리 민간 신심 속에 자리 잡기보다 주로 성인전 연구자들과 아토스산의 전통 안에서만 알려진 채 제한적으로 남았는지를 어쩌면 설명해 줄 것이다. 메기스티 라브라 수도원은 963년 아토스의 수도성인 아타나시오스가 세웠다. 아토스산이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될 때 근거가 된 ICOMOS의 평가서에 따르면, 이 수도원의 설립은 반도에서 조직화된 수도 생활이 본격화되었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1925년의 목록에 따르면, 그 밖에는 거의 알려진 바 없는 이 수도자에 관한 기본적인 문헌 증언을 지켜 낸 사본이 이 수도원 도서관에 속해 있다. 155번째 엽에 적힌 몇 마디 말이 그것이다.

출처 및 참고 문헌

  • ICOMOS (1988). World Heritage List No 454: Mount Athos, Advisory Body Evaluation. 파리: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 Spyridon of the Laura & Eustratiades, S. (1925). Catalogue of the Greek Manuscripts in the Library of the Laura on Mount Athos, with Notices from Other Libraries (Harvard Theological Studies 12).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 О. Е. П. (2000). Аввакум. 수록: Православная энциклопедия, 제1권, 83쪽. 모스크바: Церковно-научный центр «Православная энциклопедия».
  • Πασχαλίδης, Σ. (2014). Οι Άγιοι της Θεσσαλονίκης [테살로니키의 성인들]. 제8단원: Οι Νεομάρτυρες της Θεσσαλονίκης (17ος–19ος αι.) [테살로니키의 신순교자들(17–19세기)]. 테살로니키: 테살로니키 아리스토텔레스 대학교, 공개 학술 강좌.